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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일기 #11] 살았다는 사실에 감사해야하는걸까? 본문

〓백혈병 투병일기

[백혈병 일기 #11] 살았다는 사실에 감사해야하는걸까?

김단영 2022. 5. 1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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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일 깊은 잠에서 깨어나다

중환자실에서 나는 긴 잠을 잤고, 2주의 시간이 지났다. 

간호사 선생님이 나를 깨우며 '환자분 저거 보이세요?'라며 시계를 가리킨다.

10월 1일 이란다.  내가 2주 동안 잠을 자고 있었단다. '10월 1일?' 그럴리가?

난 추석 전 9월 17일에 여기 내려온 것 같은데 왜 10월 1일?

2주 동안 꿈을 꾸면서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그땐 구분하지 못했다.

 

내가 깨어 난 날 중환자실로 엄마가 오셨다.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나질 않는다. 

엄마는 나를 위로했고, 난 엄마를 위로했다는 거 그것만 기억이 난다.

 

그런데 손과 발에 손싸개 발싸개가 있었다.  내가 너무 춥다고 해서 해 놓은 줄 알았다. 

내 심장을 멈추게 하지 않기 위해서 했던 방법이 내 손과 발을 괴사 하게 만들었단다.

(손, 발 괴사 사진은 지금 봐도 너무 끔찍하다. ㅠ.ㅠ)

그땐 잘 몰랐다.

이게 내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중환자실은 너무너무 추웠다.  난 꿈속에서도 추위에 떨었고, 현실에서도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실 추위보다 더 힘들었던 건 2주 동안 날 괴롭혔던 악몽이었다.

선생님을 불러 일반 병실로 올려 달라고 졸랐지만, 아직 하루정도 경과를 봐야 한다고 안 된단다. 

추위를 견딜 수 없고, 무섭다고 제발 일반 병실로 올려 달라고 사정사정을 해서 어렵게 병실로 옮기기로 결정 내려졌다. 

저녁 7시가 돼서야 병실로 올라왔고, 2인실 병실에 나 혼자 누워 집중관리 환자가 되었다.

 

기도삽관을 했었기에 목소리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고, 소리 질러 말을 해도 아무도 내 말을 듣지 못했다.

손이 꽁꽁 묶여 있었기에 간호사를 부르는 벨을 누를 수 없었고, 

발도 꽁꽁 묶여 있었기에 걸을 수 없었고, 

나 혼자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침대에서 조차 움직이지 못했다. 

소변줄을 꼽고, 항문에 관을 꼽고, 눈만 깜빡이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숨만 쉬며 누워 있었다. 

하루 24 시간이 1년 같았고, 깨어 있어도 힘들었고 잠이 들면 또다시 이어지는 악몽으로 힘들었다. 

 

나의 이런 상황을 알기에 간호사 선생님과 조무사 선생님이 수시로 방을 왔다 갔다 했지만 비참했다. 

난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뎠는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병실로 올라오고 인턴 주치의 선생님이 날 보며 울먹인다.

'환자분 잘못되시는 줄 알고 너무 무서웠다고 잘 견뎌주어 감사하다고'

내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었는지 나중에 듣게 되며 그 선생님이 왜 그랬는지 알게 되었다.

아... 지금 내가 살아있는 게 병동 전체를 흔들 만큼 심각했었구나.

 

2021년 10월 8일 현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내 얼굴을 중환자실에 있었을 때보다 혈색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지만

얼굴색은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이었고, 눈은 황달이 심해 안과 선생님이 정기적으로 방문하셨다.

정신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고, 난 이때도 악몽을 꾸고 헛것을 보고, 이상한 말을 하곤 했다.

남편과의 면회가 허락되었고, 남편이 휴대폰을 가져다주었지만 휴대폰이 옆에 있어도 만질 수 없었다.

영양제는 계속 꼽고 있었고, 식사를 시작했다.

미음도 삼키지 못해 힘들었지만 물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2021년 10월 9일 천사가 찾아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혼자 밥도 먹지 못하고, 물도 혼자 마시지 못하고, 휴대폰도 만지지 못하는 지금의 내 상황.

남편이 선생님과 많은 상담을 했던 거 같다.

내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해야 할 거 같다는 판단을 했고 그렇게 하기로 허락을 받았다.

간병인이 있다면 간병인 병동으로 병실을 옮겨야 했지만 지금의 병실에서 가능하도록 가족에 한해 허락해 주었다.

2인실에 있었지만 일부러 옆에 환자를 받지 않았던 병원의 배려가 너무나 감사했다.

 

내가 갑자기 입원을 하게 되면서 남편은 가게를 봐야 했다.

남편은 가게 문을 닫고 내 옆에 있겠다고 했지만 갑자기 문을 닫을 수 없기에 못하게 했다.

간병에 대해 남편은 나의 중학교 친구인 절친과 통화를 했다고 한다.

그때 옆에 계시던 친구 어머니께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난 절대 반대했다.

어머니 연세도 있으시고 힘드실 거라고, 내가 편치 않을 거 같다고..... 하지만 결국 어머님께서 오셨다.

어머니께서 건강이 좋으신 것도 아니고, 일정이 있으신데도 모든 걸 다 제쳐 두고 꼭 오고 싶으셨단다.

얼마나 감사했던지^^

어머니께서 손과 발을 주물러 주시고 옆에서 나와 함께 하루 종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울고 웃었던 시간들.

나오지 않던 목소리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을 했고, 내 얼굴에도 점점 웃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머님의 기도와 사랑으로 나는 많은 호전이 있었다.

어머님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였던 것 같다 

 

2021년 10월 27일 손과 발을 잃어버린 날

중환자실에 있을 때부터 선생님들은 내 손과 발을 잘라야 한다고 이미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난 일반 병실로 올라온 후 며칠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듣게 되었다.

발은 내가 많이 불편하겠지만 잘라도 괜찮다고, 하지만 손만큼은 남겨 달라고 울며 매달렸다.

난 애견 미용사였고, 도그쇼도 계속해야 했고, 가야금도 계속해야 했고,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 모든 것들을 하지 못할 거라 생각을 하니 내 삶의 의미가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죽고 싶었다.

 

한참 힘들어할 때 동생이 병원에 와서 이런 말을 한다.

'언니 패혈증으로 죽는 사람도 많고, 언니도 가망이 없었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났어. 살아줘서 너무 고마워.

패혈증 후유증으로 가장 많은 건 시력을 잃는 거라고 하는데 시력을 잃는 것보단 손발을 잃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해.

그 어느 것도 잃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언니 받아들이자.'

나보다 어른스럽게 말하는 동생의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오갔다.

선생님께 면담을 요청해 손발을 자르겠다고 얘기를 하고 10월 27일 나는 손과 발을 절단하는 수술을 했다.

마음을 수도 없이 다잡았지만 수술실에 갈 때도 펑펑 울고, 들어가서 대기하는데도 하염없이 눈물만 나왔다.

마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옆으로 오셨다.

눈인사로 선생님께서 인사를 하신다. 괜찮다는 듯^^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마음으로 전하고 눈을 감았다.

 

이날 나는 열 개의 손가락과 열 개의 발가락을 잃어버렸다.

 

병실로 올라와 마취가 풀리면서 손, 발에 느껴지는 통증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내가 살면서 겪어온 고통 중 최고의 고통이었던 거 같다.

너무 아파 진통제를 넣어 달라 말을 하는데 진통제를 맞으면 구토를 하고, 다른 진통제를 맞아도 또 구토를 하고...

그때의 고통을 어떻게 견뎠는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하다.

중환자실에서의 고통, 손과 발을 잘라낸 고통, 만약 내 인생에 마지막 고통이 한 번 남아 있다면 죽음이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살면서 이런 고통은 느끼고 싶지가 않다.

 

손과 발이 잘린 후 암담했다.

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손, 발의 수술로 나의 백혈병 항암은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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